╰┈➤ CHARACTER/log (12)
存在証明

 

 

 

 

 

 

 

悲嘆、冷淡、絶望。

 

 

 

 

 

평생 그렇게 살아, 내 비겁함을 욕하면서, 그렇게 살아.

 

 

아카기 류노스케는 선인이 아니다. 그는 무엇이든 비관하고 부정하며 살아왔다. 나아가는 것보다 숨어버리는 것이 더 편한 자였다. 비약적 사고, 우울, 신경쇠약, 피해 망상. 아카기 류노스케는 선인이 아니다. 부정한 악의를 먹고 살아가는 자였다. 은둔자로부터 파생된 안드로이드의 망상도 딱, 거기까지. 날고 기어도 결국은 더 나아갈 수 없다. 아카기 류노스케라는 인간의 한계였다. 

 

 

 

 

YUBIKIRI-GENMAN

 

 

 

 

섬세하지 못한 단어가 파손시키는 유치라는 이름의 공상이 얼마나 되었던가. 동화와 현실의 거리감, 이상을 추구하지 않기에 유토피아에 도달하지 못할 디스토피아의 시민들. 나는 그렇기에 타인이 유치하다고 여기는 그런 것들이 좋다. 순수해질 수 없으므로 순수한 이들이 좋다. 표현에서 웃음이 나오고 잔혹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좋다. 나와 가장 먼 이야기들이 좋다. 그러니 물러지는 것이다. 괜찮습니다, 당신과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내 터전에는 공상이 검열당하고 상상이 짓밟히므로. 뭐, 그래도 지게 된다면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 말하고 옅지만 확실하게 웃어 보이는 것이다. 

 

당신이 자유롭게 창공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한다. 어쩐지 당신은 바다보다는 하늘이 생각나는 존재였다. 탁 트인 푸른 하늘 아래, 청렴한 공기마저 수면 위로 떠올리게 하는 존재였다. 땅과 바다의 경계를 흐리고 어디에든 갈 수 있는 존재와도 같다. 동화적인 의미의 해적이라면 나름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당신은 역시 모험가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해군 입장에서는 당신이 해적이라는 사실이 잘 와닿지 않습니다. 그래, 동화에서나 존재하는 정의로운 해적 말이다. 모험을 떠나고 정의를 구현하는 해적 말이다. 그래서 당신은 나의 이레귤러이다. 편협한 사고를 깨우쳐주는 원동력이다.

 

알 수 없는 이끌림이라.

연장되는 물꼬를 튼 사고에 잠시 따라가지 못했다가, 독한 술 이야기인 줄을 깨닫고 아, 하고 단말마 뱉었다. 맞는 말이다, 좋아하는 데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인과는 분명 실존한다.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언제나 계기가 있기 마련이기는 했다. 좋아하는 것을 접한 순간, 무엇이든 접하지 않으면 좋아할 수 없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좋아한다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정확하게는 체온을 높일 요령으로 마셔서 그런 겁니다.매일 술을 달고 사는 것치고는 인간보다 체온이 낮긴 했지만, 혹한을 견디는 데 보드카만 한 것도 없다는 것을 생존 요법으로 배운 이상 몸을 웅크리는 것보다는 어쩐지 술을 찾게 된다.술이 아니라 온기를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 결론을 내린다. 외의 마땅히 짚이는 건 없었는지 잠시 침묵했다.

 

지금은 제가 어떤 사람으로 보입니까? 다만 당신에게 물을뿐이었다.

당신의 눈에 투영되는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the effectiveness of justice.

 

 

 

 

인내심이야말로 자신이 가진 가장 범용적인 도구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당신에게 견줄 수는 없었지만 당신은 침묵을 통해 말을 정제하고 인내를 미덕으로 삼으니 당신과 대화하면 자연스럽게 기다리는 것이 버릇이 된다. 그것이 꼭 나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신중한 태도를 보여주는 행위야말로 저의 말을 존중해 준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누가 내 말을 이토록 경청해 주겠는가. 그러므로 당신은 사려 깊다, 군인의 직함을 가진 자가 무르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당신의 신중함이야말로 당신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인내, 반추, 도출.

 

경께서는 저를 걱정하십니까. 아니면 저로 인해 다시금 기대를 저버리게 될 당신을 걱정하십니까.

저는 자신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낙담이야말로 저를 강하게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기대를 저버리는 데 연연할 것이라면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기대가 꺾이면 애초에 기대 같은 건 하지 않았다고 자신을 달래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다 보면 정녕 자신이 기대한 적이 있었는지 반문하게 되어버린다. 그러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당신이라는 ‘존재’는 어떤가? 사상이 생명보다 진실로 더 가치 있는가? 생명이 있기에 사상이 존재한다, 사상이 우선시될 수 없다. 뜻을 이루고자 하는 이 없으면 허울뿐인 사상이 얼마나 뜻을 이어갈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나는 답한다. 전 당신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배반은 내게 있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같은 이들이 현실에 짓밟히는 것은 어쩐지 견딜 수가 없어져서… 난 당신이 꺾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니 당신이 행위로 보고자 하면, 내게 있어 당신의 모든 궤적 행위입니다. 결과론적 관점이 필요치 않다면 과정만 보면 되는 일입니다. 인과관계의 원인으로부터 답을 찾고자 하면 당신 말씀대로 원인만을 살피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무엇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무소유야말로 나의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무모함? 맹목? 그런 단어는 당신에게 붙일 것이 아니다. 무소유로 살아가는, 간혹 자신의 자아조차 벗어던지고 맹목적이게 돌변하는, 생의 노예, 죽지 못해 살아가지만 누구보다 살고 싶어 하는 자신이야말로 자아가 죽어 있었고 그렇기에 무모했다. 잃을 것이 없으니까. 지킬 것도 없으니까.

마틴 중령은 그렇기에 인내하고, 슈냐 준사관은 그렇기에 행동한다. 준사관의 행동 패턴은 지나치게 호전적이다. 그에게 주어진 사살 목표는 목숨이 오래 붙은 적이 없었다. 누군가는 영웅담의 과장이라며 폄하하다 그와 대련을 마친 이후에 진실됨을 깨닫는다. 군견은 목표물을 늘어지고 놓지를 않는다. 의도조차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항상 자신을 경계했다. 사상보다 생명이, 생명 위에 존재 증명의 욕구가 존재하게 된다면 전쟁광들과 다를 바 없어진다. 하지만 당신은? 지킬 것이 있으니 경계하고, 지킬 것이 있으니 신중하다. 지킬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당신의 강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 당신의 강점이다. 무모함이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강인함이다.

 

그러나 태생적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환경은 자아를 구성합니다. 중위님의 선택과 제 선택은 주어진 생애와 달리 본질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으며, 저와 당신은 추상과 실효로 나누어집니다. 당신이 지키는 것은 형태가 있으며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형에 불과합니다. 겪어본 적 없는 생애를 마음대로 추정해서 갈망하는 행위는 비이상이자 비정상입니다. 마음대로 동정하는 행위야말로 검열의 대상입니다. 또한 붙들 것 없는 자의 말로이기도 합니다. 후의 말은 결국 삼켰다. 내뱉으면 진정으로 추해지는 것 같아서, 영영 자신의 말대로 박제될 것 같아서, 말을 아낀다. 그러나 허락하신다면 기꺼이 갈망하겠습니다. 다만 자비를 군말 없이 받을 뿐이었다.

 

약탈한 선박이라면 종류 또한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만, 구조를 보면 타 군함과 얼추 상이할 뿐 다른 양상을 띄웁니다. 이곳에서 생활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 해군의 정식적인 교육 절차를 밟았다면 말씀대로 외우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입니다. 빌미로 삼아 소개를 부탁드리기도 했고… 특별히 더 보고할 일이 남은 것은 아니었으나 당신이 손을 뻗은 순간적으로 숨을 멈춘다. 넥타이를 가지런히 정리해 주는 손길, 걸쳐진 자켓을 고정해 주는 손길, 제 손을 잡아 당신의 소지품을 건네는 손길, 이어지는 단조롭고 태연한 어조. 이해하기까지 그저 당신을 보았다가, 이해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소중한 것, 아니십니까? 감히 제가 받아도 됩니까?

 

호의와 구분된다, 의미 불명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당신의 말만큼은 뇌리에 강하게 박혀오는 것이다.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무엇도 이상하지 않다. 나에게 몇이나 이런 말을 해줬지? 정상과 비정상의 척도에 대해 늘어두지 않거나, 실효만을 강조할 뿐 자신의 이상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실효를 추구하는 이가 이상을 논하는 것도 이상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신은 괜찮다고 흔쾌히 말한다. 그 무엇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이런 말에 위로를 받아도 될까? 당신의 온정 어린 말을 들어도 되는 존재일까? 이어지는 말에 살짝 고개를 숙였으나 분명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는 것만은 당신이 볼 수 있었겠다. 중위님이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는 않는군요, 다만 받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약조 하나 해도 괜찮겠습니까?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표정이었지만, 분명 들어찬 것은 확신이다.

 

당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기꺼이 저를 불러주십시오.

그렇다면 저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입니다.

 

 

Deepness.

 

 

 

 

당신의 삶 자체가 나에게는 기만인데.

 

차마 꺼내지 못할 말이다. 열등이야말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원죄이다. 불행에 우열을 두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동정하는 행위야말로 진정 불행한 삶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처할 필요 없이, 만약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무소유를 추구하는 것이 편하다. 얻은 것도 잃게 되는 일이 허다하고 원치도 않는데 얻는 일도 허다했으니 모두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내 삶은 불행하지 않다. 선악을 분별하지 않은 상태야말로 죄를 짓지 않는 상태인 것처럼, 무지야말로 구원의 길이었다. 그렇기에 당신의 행복과 나의 무지는 결이 같았다. 모르니까 행복할 수 있고, 모르니까 불행하지 않은 것이다. 앎을 추구할수록 불행해지고, 괴로운 것이다. 나의 처형집행의무는 그것으로부터 비롯되었으므로, 이는 불변이며 곧 불문율의 정의다. 그러니 되받아친다. 제가 남을 허무는 데 재주가 있다고 생각한 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저, 당신의 경계가 무를뿐이고, 제가 무기를 들지 않았을 뿐입니다. 우리는 절대 친구라는 이름을 가질 수 없다. 불변이다. 해적과 해군이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온 생애가 너무나도 달라 서로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몰이해는 곧 오해를 만들고 쉽게 분열된다.

 

또한, 제 후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장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세상에는 돈과 권력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용납할 수 없는 선이었는지 그 문장만큼은 뚜렷하고도 날카로웠다.

 

당신이 주장하는 것은 존중이 아닌 일종의 자비를 주장하는 것과 같았고,

그것은 내비치는 것만으로도 위선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해군의 신념에 대해서는 자신이야말로 잘 알고 있었다. 발을 들여놓은 이상 벗어날 수 없다. 일상생활까지 침범당해 돌이킬 수 없다. 군인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 전부 이 눈으로 담아왔다. 포탄과 살육, 비명과 고요. 바다에 침잠한 것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해군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죄를 저지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승자의 살육은 영웅적이고, 악이라 규정된 자의 살인은 용납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편리하고 편협한가! 그런 이들이 과연, 자신의 면죄부인 해군이라는 직함을 배신할 수 있을까? 저의 답은 항상 부정적이었다. 자신조차 머뭇거리는데, 남들이라고 덜컥 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맹목적인 제 후임이라면 더욱. 책임이라는 것은 항상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괜히 분한 것이다. 당신 같은 사람만 보면 진저리만 났다. 돈, 돈, 그 망할 놈의 돈과 명예! 자신이 실리 추구하고 그것들 손에 머금지 않는 이유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가진 자들을 보면 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다. 미치도록 미웠다. 그렇기에 저는 호흡을 가다듬고 분노에 눈멀지 않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자신이 잡혀왔기 때문에? 아니다, 추해지기 때문이다.

 

바다만이 공평하다,

바다만이 정당하다.

 

저는 당신의 말에 더 대꾸하지 못하고 그저 바다로 묵묵하게 시선을 옮겼다. 행운은 나의 편이 아니었으나, 바다는 언제나 공평하게 생명체들을 심판하거나, 생명체들을 지켜냈다. 오래 해군으로 몸담고 있었으므로 지겨울 법도 하지만 추위를 일으키는 이 바다를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그러면 나는 또 한없이 반대로 자비로워지는 것이다. …바다가 아름답군요. 찬란함 모두에게 공평하기에 그렇다. 그래, 어쩌면 당신 말이 맞다. 무언가를 사랑하기에 그리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이야말로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며, 사랑에 눈먼 자들이야말로 진실로 열정적입니다. 행위는 멍청하지 않습니다. 그저… 눈이 멀었다, 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시선을 떼지도 못하고 해안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생각한다. 당신은 정녕 제가 있기에 이 바다가 평소보다 더 아름다울까? 바다가 여기서 더 아름다워질 수는 있는 것일까? 예술의 척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며 당신의 내면까지는 알 수 없으니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 그런 의문이 들자 바다가 아닌 당신을 보고 있었다. 바다를 사랑하는 민물고기는 제 몸이 따가운 줄도 모르고 계속 헤엄치는구나. 꼭 불나방과 같은 꼴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당신이 안쓰러운 것이다. 안타까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 것이다. 그의 사랑은 예스러운 비극이었다. 그렇기에 감히 당신의 방랑이 어쩌면 정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사랑이 당신을 여기까지 몰아붙였다. 그렇다면 죄를 물어야 할 것은 당신인가, 바다인가. 아니면 그 지독하고도 끔찍한 사랑인가. 지식이 짧고 우둔한 저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시 묻습니다. 행복하십니까? 자신의 사랑에 스스로가 파묻혀 몰락할지라도, 행복할 수 있습니까? 

 

 

yunic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