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ffectiveness of justice.

 

 

 

 

인내심이야말로 자신이 가진 가장 범용적인 도구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당신에게 견줄 수는 없었지만 당신은 침묵을 통해 말을 정제하고 인내를 미덕으로 삼으니 당신과 대화하면 자연스럽게 기다리는 것이 버릇이 된다. 그것이 꼭 나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신중한 태도를 보여주는 행위야말로 저의 말을 존중해 준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누가 내 말을 이토록 경청해 주겠는가. 그러므로 당신은 사려 깊다, 군인의 직함을 가진 자가 무르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당신의 신중함이야말로 당신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인내, 반추, 도출.

 

경께서는 저를 걱정하십니까. 아니면 저로 인해 다시금 기대를 저버리게 될 당신을 걱정하십니까.

저는 자신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낙담이야말로 저를 강하게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기대를 저버리는 데 연연할 것이라면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기대가 꺾이면 애초에 기대 같은 건 하지 않았다고 자신을 달래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다 보면 정녕 자신이 기대한 적이 있었는지 반문하게 되어버린다. 그러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당신이라는 ‘존재’는 어떤가? 사상이 생명보다 진실로 더 가치 있는가? 생명이 있기에 사상이 존재한다, 사상이 우선시될 수 없다. 뜻을 이루고자 하는 이 없으면 허울뿐인 사상이 얼마나 뜻을 이어갈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나는 답한다. 전 당신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배반은 내게 있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같은 이들이 현실에 짓밟히는 것은 어쩐지 견딜 수가 없어져서… 난 당신이 꺾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니 당신이 행위로 보고자 하면, 내게 있어 당신의 모든 궤적 행위입니다. 결과론적 관점이 필요치 않다면 과정만 보면 되는 일입니다. 인과관계의 원인으로부터 답을 찾고자 하면 당신 말씀대로 원인만을 살피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무엇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무소유야말로 나의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무모함? 맹목? 그런 단어는 당신에게 붙일 것이 아니다. 무소유로 살아가는, 간혹 자신의 자아조차 벗어던지고 맹목적이게 돌변하는, 생의 노예, 죽지 못해 살아가지만 누구보다 살고 싶어 하는 자신이야말로 자아가 죽어 있었고 그렇기에 무모했다. 잃을 것이 없으니까. 지킬 것도 없으니까.

마틴 중령은 그렇기에 인내하고, 슈냐 준사관은 그렇기에 행동한다. 준사관의 행동 패턴은 지나치게 호전적이다. 그에게 주어진 사살 목표는 목숨이 오래 붙은 적이 없었다. 누군가는 영웅담의 과장이라며 폄하하다 그와 대련을 마친 이후에 진실됨을 깨닫는다. 군견은 목표물을 늘어지고 놓지를 않는다. 의도조차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항상 자신을 경계했다. 사상보다 생명이, 생명 위에 존재 증명의 욕구가 존재하게 된다면 전쟁광들과 다를 바 없어진다. 하지만 당신은? 지킬 것이 있으니 경계하고, 지킬 것이 있으니 신중하다. 지킬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당신의 강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 당신의 강점이다. 무모함이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강인함이다.

 

그러나 태생적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환경은 자아를 구성합니다. 중위님의 선택과 제 선택은 주어진 생애와 달리 본질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으며, 저와 당신은 추상과 실효로 나누어집니다. 당신이 지키는 것은 형태가 있으며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형에 불과합니다. 겪어본 적 없는 생애를 마음대로 추정해서 갈망하는 행위는 비이상이자 비정상입니다. 마음대로 동정하는 행위야말로 검열의 대상입니다. 또한 붙들 것 없는 자의 말로이기도 합니다. 후의 말은 결국 삼켰다. 내뱉으면 진정으로 추해지는 것 같아서, 영영 자신의 말대로 박제될 것 같아서, 말을 아낀다. 그러나 허락하신다면 기꺼이 갈망하겠습니다. 다만 자비를 군말 없이 받을 뿐이었다.

 

약탈한 선박이라면 종류 또한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만, 구조를 보면 타 군함과 얼추 상이할 뿐 다른 양상을 띄웁니다. 이곳에서 생활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 해군의 정식적인 교육 절차를 밟았다면 말씀대로 외우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입니다. 빌미로 삼아 소개를 부탁드리기도 했고… 특별히 더 보고할 일이 남은 것은 아니었으나 당신이 손을 뻗은 순간적으로 숨을 멈춘다. 넥타이를 가지런히 정리해 주는 손길, 걸쳐진 자켓을 고정해 주는 손길, 제 손을 잡아 당신의 소지품을 건네는 손길, 이어지는 단조롭고 태연한 어조. 이해하기까지 그저 당신을 보았다가, 이해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소중한 것, 아니십니까? 감히 제가 받아도 됩니까?

 

호의와 구분된다, 의미 불명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당신의 말만큼은 뇌리에 강하게 박혀오는 것이다.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무엇도 이상하지 않다. 나에게 몇이나 이런 말을 해줬지? 정상과 비정상의 척도에 대해 늘어두지 않거나, 실효만을 강조할 뿐 자신의 이상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실효를 추구하는 이가 이상을 논하는 것도 이상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신은 괜찮다고 흔쾌히 말한다. 그 무엇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이런 말에 위로를 받아도 될까? 당신의 온정 어린 말을 들어도 되는 존재일까? 이어지는 말에 살짝 고개를 숙였으나 분명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는 것만은 당신이 볼 수 있었겠다. 중위님이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는 않는군요, 다만 받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약조 하나 해도 괜찮겠습니까?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표정이었지만, 분명 들어찬 것은 확신이다.

 

당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기꺼이 저를 불러주십시오.

그렇다면 저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입니다.

 

 

yunic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