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ness.

 

 

 

 

당신의 삶 자체가 나에게는 기만인데.

 

차마 꺼내지 못할 말이다. 열등이야말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원죄이다. 불행에 우열을 두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동정하는 행위야말로 진정 불행한 삶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처할 필요 없이, 만약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무소유를 추구하는 것이 편하다. 얻은 것도 잃게 되는 일이 허다하고 원치도 않는데 얻는 일도 허다했으니 모두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내 삶은 불행하지 않다. 선악을 분별하지 않은 상태야말로 죄를 짓지 않는 상태인 것처럼, 무지야말로 구원의 길이었다. 그렇기에 당신의 행복과 나의 무지는 결이 같았다. 모르니까 행복할 수 있고, 모르니까 불행하지 않은 것이다. 앎을 추구할수록 불행해지고, 괴로운 것이다. 나의 처형집행의무는 그것으로부터 비롯되었으므로, 이는 불변이며 곧 불문율의 정의다. 그러니 되받아친다. 제가 남을 허무는 데 재주가 있다고 생각한 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저, 당신의 경계가 무를뿐이고, 제가 무기를 들지 않았을 뿐입니다. 우리는 절대 친구라는 이름을 가질 수 없다. 불변이다. 해적과 해군이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온 생애가 너무나도 달라 서로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몰이해는 곧 오해를 만들고 쉽게 분열된다.

 

또한, 제 후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장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세상에는 돈과 권력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용납할 수 없는 선이었는지 그 문장만큼은 뚜렷하고도 날카로웠다.

 

당신이 주장하는 것은 존중이 아닌 일종의 자비를 주장하는 것과 같았고,

그것은 내비치는 것만으로도 위선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해군의 신념에 대해서는 자신이야말로 잘 알고 있었다. 발을 들여놓은 이상 벗어날 수 없다. 일상생활까지 침범당해 돌이킬 수 없다. 군인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 전부 이 눈으로 담아왔다. 포탄과 살육, 비명과 고요. 바다에 침잠한 것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해군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죄를 저지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승자의 살육은 영웅적이고, 악이라 규정된 자의 살인은 용납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편리하고 편협한가! 그런 이들이 과연, 자신의 면죄부인 해군이라는 직함을 배신할 수 있을까? 저의 답은 항상 부정적이었다. 자신조차 머뭇거리는데, 남들이라고 덜컥 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맹목적인 제 후임이라면 더욱. 책임이라는 것은 항상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괜히 분한 것이다. 당신 같은 사람만 보면 진저리만 났다. 돈, 돈, 그 망할 놈의 돈과 명예! 자신이 실리 추구하고 그것들 손에 머금지 않는 이유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가진 자들을 보면 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다. 미치도록 미웠다. 그렇기에 저는 호흡을 가다듬고 분노에 눈멀지 않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자신이 잡혀왔기 때문에? 아니다, 추해지기 때문이다.

 

바다만이 공평하다,

바다만이 정당하다.

 

저는 당신의 말에 더 대꾸하지 못하고 그저 바다로 묵묵하게 시선을 옮겼다. 행운은 나의 편이 아니었으나, 바다는 언제나 공평하게 생명체들을 심판하거나, 생명체들을 지켜냈다. 오래 해군으로 몸담고 있었으므로 지겨울 법도 하지만 추위를 일으키는 이 바다를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그러면 나는 또 한없이 반대로 자비로워지는 것이다. …바다가 아름답군요. 찬란함 모두에게 공평하기에 그렇다. 그래, 어쩌면 당신 말이 맞다. 무언가를 사랑하기에 그리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이야말로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며, 사랑에 눈먼 자들이야말로 진실로 열정적입니다. 행위는 멍청하지 않습니다. 그저… 눈이 멀었다, 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시선을 떼지도 못하고 해안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생각한다. 당신은 정녕 제가 있기에 이 바다가 평소보다 더 아름다울까? 바다가 여기서 더 아름다워질 수는 있는 것일까? 예술의 척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며 당신의 내면까지는 알 수 없으니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 그런 의문이 들자 바다가 아닌 당신을 보고 있었다. 바다를 사랑하는 민물고기는 제 몸이 따가운 줄도 모르고 계속 헤엄치는구나. 꼭 불나방과 같은 꼴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당신이 안쓰러운 것이다. 안타까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 것이다. 그의 사랑은 예스러운 비극이었다. 그렇기에 감히 당신의 방랑이 어쩌면 정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사랑이 당신을 여기까지 몰아붙였다. 그렇다면 죄를 물어야 할 것은 당신인가, 바다인가. 아니면 그 지독하고도 끔찍한 사랑인가. 지식이 짧고 우둔한 저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시 묻습니다. 행복하십니까? 자신의 사랑에 스스로가 파묻혀 몰락할지라도, 행복할 수 있습니까? 

 

 

yunic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