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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BIKIRI-GENMAN

 

 

 

 

섬세하지 못한 단어가 파손시키는 유치라는 이름의 공상이 얼마나 되었던가. 동화와 현실의 거리감, 이상을 추구하지 않기에 유토피아에 도달하지 못할 디스토피아의 시민들. 나는 그렇기에 타인이 유치하다고 여기는 그런 것들이 좋다. 순수해질 수 없으므로 순수한 이들이 좋다. 표현에서 웃음이 나오고 잔혹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좋다. 나와 가장 먼 이야기들이 좋다. 그러니 물러지는 것이다. 괜찮습니다, 당신과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내 터전에는 공상이 검열당하고 상상이 짓밟히므로. 뭐, 그래도 지게 된다면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 말하고 옅지만 확실하게 웃어 보이는 것이다. 

 

당신이 자유롭게 창공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한다. 어쩐지 당신은 바다보다는 하늘이 생각나는 존재였다. 탁 트인 푸른 하늘 아래, 청렴한 공기마저 수면 위로 떠올리게 하는 존재였다. 땅과 바다의 경계를 흐리고 어디에든 갈 수 있는 존재와도 같다. 동화적인 의미의 해적이라면 나름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당신은 역시 모험가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해군 입장에서는 당신이 해적이라는 사실이 잘 와닿지 않습니다. 그래, 동화에서나 존재하는 정의로운 해적 말이다. 모험을 떠나고 정의를 구현하는 해적 말이다. 그래서 당신은 나의 이레귤러이다. 편협한 사고를 깨우쳐주는 원동력이다.

 

알 수 없는 이끌림이라.

연장되는 물꼬를 튼 사고에 잠시 따라가지 못했다가, 독한 술 이야기인 줄을 깨닫고 아, 하고 단말마 뱉었다. 맞는 말이다, 좋아하는 데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인과는 분명 실존한다.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언제나 계기가 있기 마련이기는 했다. 좋아하는 것을 접한 순간, 무엇이든 접하지 않으면 좋아할 수 없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좋아한다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정확하게는 체온을 높일 요령으로 마셔서 그런 겁니다.매일 술을 달고 사는 것치고는 인간보다 체온이 낮긴 했지만, 혹한을 견디는 데 보드카만 한 것도 없다는 것을 생존 요법으로 배운 이상 몸을 웅크리는 것보다는 어쩐지 술을 찾게 된다.술이 아니라 온기를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 결론을 내린다. 외의 마땅히 짚이는 건 없었는지 잠시 침묵했다.

 

지금은 제가 어떤 사람으로 보입니까? 다만 당신에게 물을뿐이었다.

당신의 눈에 투영되는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the effectiveness of justice.

 

 

 

 

인내심이야말로 자신이 가진 가장 범용적인 도구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당신에게 견줄 수는 없었지만 당신은 침묵을 통해 말을 정제하고 인내를 미덕으로 삼으니 당신과 대화하면 자연스럽게 기다리는 것이 버릇이 된다. 그것이 꼭 나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신중한 태도를 보여주는 행위야말로 저의 말을 존중해 준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누가 내 말을 이토록 경청해 주겠는가. 그러므로 당신은 사려 깊다, 군인의 직함을 가진 자가 무르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당신의 신중함이야말로 당신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인내, 반추, 도출.

 

경께서는 저를 걱정하십니까. 아니면 저로 인해 다시금 기대를 저버리게 될 당신을 걱정하십니까.

저는 자신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낙담이야말로 저를 강하게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기대를 저버리는 데 연연할 것이라면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기대가 꺾이면 애초에 기대 같은 건 하지 않았다고 자신을 달래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다 보면 정녕 자신이 기대한 적이 있었는지 반문하게 되어버린다. 그러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당신이라는 ‘존재’는 어떤가? 사상이 생명보다 진실로 더 가치 있는가? 생명이 있기에 사상이 존재한다, 사상이 우선시될 수 없다. 뜻을 이루고자 하는 이 없으면 허울뿐인 사상이 얼마나 뜻을 이어갈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나는 답한다. 전 당신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배반은 내게 있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같은 이들이 현실에 짓밟히는 것은 어쩐지 견딜 수가 없어져서… 난 당신이 꺾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니 당신이 행위로 보고자 하면, 내게 있어 당신의 모든 궤적 행위입니다. 결과론적 관점이 필요치 않다면 과정만 보면 되는 일입니다. 인과관계의 원인으로부터 답을 찾고자 하면 당신 말씀대로 원인만을 살피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무엇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무소유야말로 나의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무모함? 맹목? 그런 단어는 당신에게 붙일 것이 아니다. 무소유로 살아가는, 간혹 자신의 자아조차 벗어던지고 맹목적이게 돌변하는, 생의 노예, 죽지 못해 살아가지만 누구보다 살고 싶어 하는 자신이야말로 자아가 죽어 있었고 그렇기에 무모했다. 잃을 것이 없으니까. 지킬 것도 없으니까.

마틴 중령은 그렇기에 인내하고, 슈냐 준사관은 그렇기에 행동한다. 준사관의 행동 패턴은 지나치게 호전적이다. 그에게 주어진 사살 목표는 목숨이 오래 붙은 적이 없었다. 누군가는 영웅담의 과장이라며 폄하하다 그와 대련을 마친 이후에 진실됨을 깨닫는다. 군견은 목표물을 늘어지고 놓지를 않는다. 의도조차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항상 자신을 경계했다. 사상보다 생명이, 생명 위에 존재 증명의 욕구가 존재하게 된다면 전쟁광들과 다를 바 없어진다. 하지만 당신은? 지킬 것이 있으니 경계하고, 지킬 것이 있으니 신중하다. 지킬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당신의 강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 당신의 강점이다. 무모함이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강인함이다.

 

그러나 태생적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환경은 자아를 구성합니다. 중위님의 선택과 제 선택은 주어진 생애와 달리 본질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으며, 저와 당신은 추상과 실효로 나누어집니다. 당신이 지키는 것은 형태가 있으며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형에 불과합니다. 겪어본 적 없는 생애를 마음대로 추정해서 갈망하는 행위는 비이상이자 비정상입니다. 마음대로 동정하는 행위야말로 검열의 대상입니다. 또한 붙들 것 없는 자의 말로이기도 합니다. 후의 말은 결국 삼켰다. 내뱉으면 진정으로 추해지는 것 같아서, 영영 자신의 말대로 박제될 것 같아서, 말을 아낀다. 그러나 허락하신다면 기꺼이 갈망하겠습니다. 다만 자비를 군말 없이 받을 뿐이었다.

 

약탈한 선박이라면 종류 또한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만, 구조를 보면 타 군함과 얼추 상이할 뿐 다른 양상을 띄웁니다. 이곳에서 생활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 해군의 정식적인 교육 절차를 밟았다면 말씀대로 외우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입니다. 빌미로 삼아 소개를 부탁드리기도 했고… 특별히 더 보고할 일이 남은 것은 아니었으나 당신이 손을 뻗은 순간적으로 숨을 멈춘다. 넥타이를 가지런히 정리해 주는 손길, 걸쳐진 자켓을 고정해 주는 손길, 제 손을 잡아 당신의 소지품을 건네는 손길, 이어지는 단조롭고 태연한 어조. 이해하기까지 그저 당신을 보았다가, 이해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소중한 것, 아니십니까? 감히 제가 받아도 됩니까?

 

호의와 구분된다, 의미 불명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당신의 말만큼은 뇌리에 강하게 박혀오는 것이다.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무엇도 이상하지 않다. 나에게 몇이나 이런 말을 해줬지? 정상과 비정상의 척도에 대해 늘어두지 않거나, 실효만을 강조할 뿐 자신의 이상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실효를 추구하는 이가 이상을 논하는 것도 이상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신은 괜찮다고 흔쾌히 말한다. 그 무엇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이런 말에 위로를 받아도 될까? 당신의 온정 어린 말을 들어도 되는 존재일까? 이어지는 말에 살짝 고개를 숙였으나 분명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는 것만은 당신이 볼 수 있었겠다. 중위님이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는 않는군요, 다만 받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약조 하나 해도 괜찮겠습니까?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표정이었지만, 분명 들어찬 것은 확신이다.

 

당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기꺼이 저를 불러주십시오.

그렇다면 저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입니다.

 

 

Deepness.

 

 

 

 

당신의 삶 자체가 나에게는 기만인데.

 

차마 꺼내지 못할 말이다. 열등이야말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원죄이다. 불행에 우열을 두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동정하는 행위야말로 진정 불행한 삶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처할 필요 없이, 만약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무소유를 추구하는 것이 편하다. 얻은 것도 잃게 되는 일이 허다하고 원치도 않는데 얻는 일도 허다했으니 모두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내 삶은 불행하지 않다. 선악을 분별하지 않은 상태야말로 죄를 짓지 않는 상태인 것처럼, 무지야말로 구원의 길이었다. 그렇기에 당신의 행복과 나의 무지는 결이 같았다. 모르니까 행복할 수 있고, 모르니까 불행하지 않은 것이다. 앎을 추구할수록 불행해지고, 괴로운 것이다. 나의 처형집행의무는 그것으로부터 비롯되었으므로, 이는 불변이며 곧 불문율의 정의다. 그러니 되받아친다. 제가 남을 허무는 데 재주가 있다고 생각한 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저, 당신의 경계가 무를뿐이고, 제가 무기를 들지 않았을 뿐입니다. 우리는 절대 친구라는 이름을 가질 수 없다. 불변이다. 해적과 해군이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온 생애가 너무나도 달라 서로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몰이해는 곧 오해를 만들고 쉽게 분열된다.

 

또한, 제 후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장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세상에는 돈과 권력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용납할 수 없는 선이었는지 그 문장만큼은 뚜렷하고도 날카로웠다.

 

당신이 주장하는 것은 존중이 아닌 일종의 자비를 주장하는 것과 같았고,

그것은 내비치는 것만으로도 위선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해군의 신념에 대해서는 자신이야말로 잘 알고 있었다. 발을 들여놓은 이상 벗어날 수 없다. 일상생활까지 침범당해 돌이킬 수 없다. 군인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 전부 이 눈으로 담아왔다. 포탄과 살육, 비명과 고요. 바다에 침잠한 것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해군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죄를 저지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승자의 살육은 영웅적이고, 악이라 규정된 자의 살인은 용납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편리하고 편협한가! 그런 이들이 과연, 자신의 면죄부인 해군이라는 직함을 배신할 수 있을까? 저의 답은 항상 부정적이었다. 자신조차 머뭇거리는데, 남들이라고 덜컥 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맹목적인 제 후임이라면 더욱. 책임이라는 것은 항상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괜히 분한 것이다. 당신 같은 사람만 보면 진저리만 났다. 돈, 돈, 그 망할 놈의 돈과 명예! 자신이 실리 추구하고 그것들 손에 머금지 않는 이유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가진 자들을 보면 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다. 미치도록 미웠다. 그렇기에 저는 호흡을 가다듬고 분노에 눈멀지 않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자신이 잡혀왔기 때문에? 아니다, 추해지기 때문이다.

 

바다만이 공평하다,

바다만이 정당하다.

 

저는 당신의 말에 더 대꾸하지 못하고 그저 바다로 묵묵하게 시선을 옮겼다. 행운은 나의 편이 아니었으나, 바다는 언제나 공평하게 생명체들을 심판하거나, 생명체들을 지켜냈다. 오래 해군으로 몸담고 있었으므로 지겨울 법도 하지만 추위를 일으키는 이 바다를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그러면 나는 또 한없이 반대로 자비로워지는 것이다. …바다가 아름답군요. 찬란함 모두에게 공평하기에 그렇다. 그래, 어쩌면 당신 말이 맞다. 무언가를 사랑하기에 그리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이야말로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며, 사랑에 눈먼 자들이야말로 진실로 열정적입니다. 행위는 멍청하지 않습니다. 그저… 눈이 멀었다, 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시선을 떼지도 못하고 해안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생각한다. 당신은 정녕 제가 있기에 이 바다가 평소보다 더 아름다울까? 바다가 여기서 더 아름다워질 수는 있는 것일까? 예술의 척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며 당신의 내면까지는 알 수 없으니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 그런 의문이 들자 바다가 아닌 당신을 보고 있었다. 바다를 사랑하는 민물고기는 제 몸이 따가운 줄도 모르고 계속 헤엄치는구나. 꼭 불나방과 같은 꼴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당신이 안쓰러운 것이다. 안타까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 것이다. 그의 사랑은 예스러운 비극이었다. 그렇기에 감히 당신의 방랑이 어쩌면 정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사랑이 당신을 여기까지 몰아붙였다. 그렇다면 죄를 물어야 할 것은 당신인가, 바다인가. 아니면 그 지독하고도 끔찍한 사랑인가. 지식이 짧고 우둔한 저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시 묻습니다. 행복하십니까? 자신의 사랑에 스스로가 파묻혀 몰락할지라도, 행복할 수 있습니까? 

 

 

Utopiosphere.

 

 

 

 

지탱이라, 이렇게 연약한 소망이? 제가 말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허울뿐이지 않은가. 해군의 싸움이 자신에게 얼마나 유의미한 답을 가져왔는가. 나의 궁극적 목표를 이루는 데 해군의 행적이 과연 도움이 된 적 있던가? 나의 행적으로 안전을 보장받은 이들이 과연 세상 밖에 있는가? 제가 목적성에 대해 이리 답을 내뱉을 때마다 본질적 의문이 슬금슬금 타고 오르는 것이다. 의심,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실효, 자신이 또한 마찬가지로 추구하는 그것이 발목을 잡으면서. 무뎌지다니 당치도 않다. 전 무뎌질 필요가 있었다. 목적성을 덕지덕지 붙여서라도 만들어 두지 않으면 무너지기 십상이니까. 당신이야말로, 모든 일에 무르게 행동하는 당신이야말로 아는 일 아닌가. 당신이야말로… 경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야, 당신은… ……

 

중위님이야말로, 정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지 않습니까.

중위님이야말로 정에 매몰되지 않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스스로 정의 내린 이유라 함은, 지금의 자신을 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타인이 만들어 낸 목적성에 따를 뿐인 말에 자아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 아닌가? 당신과 시작부터 다르다. 당신이 무엇을 추구하며 해군이 되었는지는 모르는 일이나, 당신에게는 선택권이 있었고 당신이 가진 이상이 보다 더 높은 지위를 허락하고 권리를 제공한다. 나는 간혹 그런 이들이 참을 수 없이 부러우면서도 동시에 무서운 것이다. 올바른 사상을 변질시키는 이들을 얼마나 봐왔는가. 이런 혜성 같은 이들을 향한 불합리를 얼마나 목격했던가. 중위님, 저는 매몰되지 않습니다. 이 또한 저는 결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체스말로 생각하는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신념 이상으로 목숨 끊어지는 것이 두려울 때도 많고, 겁에 질려 피하고 싶은 순간도 많습니다. 이런 저는 절대 특정한 사상을 치사량 수준으로 제게 주입시키더라도 매몰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위님은 어떻습니까? 자신의 사상을 위해 몸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은 두려움입니까, 용기입니까? 저는 그것이야말로 두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겁먹은 자들만이 이상이 실현되지 않은 세계에 낙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살아남는 것도 비겁하다. 나는 참 비겁하게도 살아간다. 내가 인간이기 때문일까? 중위님, 저희는 죽음보다 삶을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아니면, 내가 배움이 짧아서 그런 것일까? 그래도 살아가야 합니다. 당신이 그들을 아끼는 만큼, 당신은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렇기에 죽으면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저는 고개를 숙이고 가만 덧붙였다. 맞습니다, 말씀대로 아이들이야말로 세계의 구성요소입니다. 아, 마름모꼴의 두 별이 빛난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총을 드는 세계가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총이 없는 삶을 살아본 적도 없는 자가 이런 걸 원해도 괜찮은 걸까요? 준사관이 아닌, 슈냐가 물었다. 경험하지도 않은 것을 물려주기 위해 싸운다는 건 이상한가요?

 


 

아닙니다, 답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저는 중위님의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제 후임이 당신 아래에서 일할 수 있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 말하며 제 팔을 쓸어내렸다. 본보기라는 것이겠지, 그렇다고 같은 궤적을 그릴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도 않는다. 본질부터 다른 이를 흉내 낸다고 해서 까마귀가 백조가 될 수는 없다. 그런 이치였다.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낙담한 것은 아니었다. 군 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차이를 느끼는 것은 으레 있는 일이었고, 그저 다시금 깨달음을 얻을 뿐이다.

 

이어지는 말을 듣고는 덧붙였다. 목적은 모르지만, 전서구의 사용이 그렇게까지 위험하다고 판단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닿은 이후 실질적 교전이 시작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가 되겠죠. 몸이 여기에 있는 이상, 함몰된다면 동반자살이나 마찬가지이니. 육탄전으로 갈수록 더 불리해질 것을 고려하면 통신을 할 수 있더라도 뒤로 미루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살짝 붙어서 작게 중얼거렸다. 당신에게만 들릴 수준의. 또한, 차라리 이 상황을 기회로 잡아 선박 내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차라리 더 유리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리 말하고는 다시 떨어졌다. 종이와 펜이 있다면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오는 것이 천성 군인이었다.

 

저도 돌아가면 마찬가지로 윗선에 올려야겠습니다. 제 말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지만, 그쪽에서 먼저 제의한다면 거절하기도 힘들 테니. 이익이 목적이라면 오히려 손해를 감수하지 않고자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괜찮을 겁니다. 이어지는, 취미냐는 말에 고개 슬 기울이고는 말았다. 취미라고 해야 할까요, 그저… 잔재주를 배웠기에 써먹고 있을 뿐입니다. 해군이 이런 잔재주를 어디서 배웠는지가 의문이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고는 의외냐는 듯 고개 까딱였다. 

 

 

무색, 무미, 무취.

 

 

신청서 본문에 작성한 ‘그’는 성별지칭명사가 아닙니다.


 

 

 

 

[ 不文律의 正義  ]

불문율의 정의

 

 

“ 내버려 둬, 어떻게든 되겠지… ”

(해결 안 되면 어쩌지…)





이름 슈냐 sunya

; 산스크리트어로 shûnya로 쓴다. 군대 내에서 사용하는 코드네임이냐고 물어보니까 자기 본명이라고 한다. 해적 손에 잡혀 들어온 해군 놈이 배짱은 두둑한지 본명까지 밝힌다. 기가 찰 노릇이다. 단어의 어원 생각해 보면 참 사연이 있는 것도 같은데 당사자 얼굴 보면 아닌 것도 같다. 

한자어로 표현하자면 ‘빌 공空’으로 ‘있을 유(有)’ 자와 합해 ‘비어(空) 있음(有)’으로 사용된다. 비어 있다는 것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서로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무(無)’와 궤를 달리한다. 



나이 28세

; 군대에서 이름 날린 건 인간 기준으로 미성년자부터라고 하니, (불법 아닌가?) 그에 대해 알 사람들은 알 것이다. 과거의 명성은 쉽게 기억에서 발화될 실력이 아니다. 하긴, 그 정도 실력 정도는 가져야 겨우 이런 나이에 준사관이라는 직함을 받고 이렇게 바다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지. 물론 지금은 해적의 인질 신세지만. 

나이가 참 애매한 것이 해군이라기에는 현역에 못 미치고, 평균 인간 나이로는 제법 나이가 있다고 생각될 법하다. 아직까지 미혼이며 앞으로도 결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한다. 군인에게 연인이라는 것은 사치라는 둥… 그러나 후임 입장에서는 금시초문인 걸 보니 본인만의 사상인 것으로 추측된다. 





외관

전신 이미지는 @KETT_0_ 님의 작업물입니다.

 

; 외관만 보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추정될 정도로 젊어 보인다. 먼 후손 중에서 인간과 흡사한 종족의 영생을 사는 종족의 피가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입대 초반에 비해서 달라진 것이라고는 살짝 커진 키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것도 ‘살짝 컸다’ 정도이지 크게 두각을 보인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의 한계점을 그대로 지닌 인간이다. 인간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 인간이라는 육신의 한계는 너무나도 극명하다. 

 

전쟁 중 보는 사람을 기준으로 왼쪽 시력을 아예 잃었다. 저격수였으니 제명 사유가 될 법도 한데 붕대를 착용하고도 잘도 전장에 다닌다. 다른 쪽 눈을 보면 잊기 힘든 푸른 바다색에 인간이 지닐 수 없는 흰색 레티클 동공의 소유자. 전례 없는 전쟁병기 수준의 조준력의 근원 전부 그 눈에 집합되어 있었다. 물론 조준을 하기 위한 부가적인 요소들은 본인이 키워왔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그의 저격 실력은 가히 천성이자 재능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일부 전장에서 살아남은 목격자들은 그 눈으로 인해 그가 인간이 아닌 타 종족과의 혼혈이 아니냐는 주장을 했지만, 이러한 동공을 가진 종족이 아직까지는 밝혀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본인도 왜 이런 눈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옷을 보면 해군 옷을 아직도 단정하게 입고 있다. 잡혀온 다른 해군이 다른 소속이라면 복장이 좀 상이하겠지만, 본인 소속 복식을 하나도 빠짐없이 입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얼마 잡히지 않은 주름은 거의 빳빳할 정도였고, 걸치듯 쓴 모자는 거친 전장 속에서도 늘 착용하고 다녔다. 가끔 모자를 벗은 모습을 볼 수는 있었지만 허전한 듯 다시 모자를 고쳐쓰기를 반복, 결국 벗기기는 포기했다. 그가 속한 부대의 가장 큰 특징은 한쪽에만 걸쳐진 코트 형태의 망토로, 소매를 넣어 입으면 완벽하게 절반의 색상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른바 ‘바다의 균형’이라는 사상을 복장으로 내세운 부대 다운 디자인. 막상 입는 본인은 흰색이 좋다며 대충 걸치고 다니기만 했지만. 





키 / 몸무게

160 cm 55 kg



 

성격

 

 Main. 명예 없는 복종 · 훈련 덜 된 군견 · 정의구현의 실효성 부재 

 

자신에게 명예는 없으나 주인 누구인지 알고 훈련이 덜 되었어도 군견은 군견이다. 태생부터 군인 체질인지 성격적 허점이 없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명예나 훈장 따위가 아니다. 작위를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 오히려 군인으로서는 본보기가 되어 마땅한 인물이 되었다. 원하지 않을수록 명예를 취했다. 어린 나이에 준사관이 된 본질적 이유 바로 성격에 있었다. 명예를 추구하지 않는 본질.

 

막상 염세적이라고 보기에는 세상 물정에 있어 간악했고, 전쟁광으로 일축하기에는 한없이 인도적이며, 정의보다는 실효를 추구했다. 무형의 정의보다는 당장의 현실이 더 중요했다. 그렇다고 현실 앞에 쉬이 무릎 꿇는 일 없이 살았다. 복합적 사고 인간의 전유물이며 그는 분명 인간의 이치에 사고했으나 자신의 지휘관 앞에서는 맹목적이다. 물어뜯을 상대와 아닌 상대를 구분하는 영리함까지 갖추었으니 퍽 이상적인 준사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까, 행적만 놓고 봤을 때는 말이다.

 

사적인 영역으로 들어가 보면 묘하게 속물적이다. 그렇다고 부와 명예 그득하게 안고 가는 인물 군상은 아니고 단순히 입에 풀칠만 하고 살 수 있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일축했다. 굶지 않으면 됐다, 죽지 않으면 됐다, 입에 달고 사는 소리는 대부분 생사와 관련되었으며 그것 외에 아무런 이상도 사명도 없는 것처럼 살았다. 아니, 실제로 그것 외에 없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사연이 없다. 그러니까 명예도 없고 충성심도 되다 말았고 무형을 등한시하며 실효에 목매고 살아가는 것이다. 정의를 상징하는 해군의 준사관이나 되는 사람에게조차 정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그건 정의를 찾고자 하는 이들의 몫이다. 하루를 연명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렇게 답한다.





특징

 

의상 디자인은 @KETT_0_ 님의 작업물입니다.



전직 해군. 잡혀왔다.

 

준사관 정도면 솔직히 ‘한 건 했다’ 싶을 인질이 맞기는 하다. 하지만 잡아온 놈을 까고 보니까 군인이라는 감각이 잡혀오다 없어지기라도 했는지 지나치게 평화로운 태도로 일관한다. 구출하고 싶으면 어련히 알아서 구출하러 오겠지…. 이건 무슨 미친 소리인가? 격식과 함께 명예도 팔아넘겼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뭐, 같이 잡혀 온 직계 부하 아스톨포의 안위를 챙기는 모습을 보면 영 책임감이 없어 보이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알 턱이 없다. 어쩌면 정말 생각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만히 있는 이유를 보면, 그래. 이 문제다.

쯧, 그걸 또 술이라고 마시고 앉아있냐. 한 수 보여준다는 (지가 뭔데?) 명목하에 보여준 주량은 끝이 있는지 두려울 지경이다. 그렇게 끝도 없이 마셔대도 해군 또한 바닷사람인지라 비린 바닷물 냄새로 금방 알코올 향이 덮어진다. 과장 올려보자면 술에 살고 술에 죽는다. 함선 내에서 도통 취하는 꼴을 본 적이 (아직은) 없다. 충성심 없는 성향을 보면 역발상도 가능하다. 그러니까, 그냥 술이 마시고 싶어서 잡혀온 상황을 타개하지 않는 것 같다는 그럴듯한 추론이 나오는 것이다. 술 한두 번 말아본 솜씨가 아니다. 이건 전문가다. 그러다가도 담배를 꺼내면 질색을 한다. 술맛 떨어진다고 치우라고 한다. 잡혀왔다는 자각이 있는가? 하는 짓만 보면 없는 것 같다.

 

군인답게 다나까로 대답하나, 융통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않은지 상대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곧잘 말투 교정했다. 아예 툭 까놓고 반말하는 상대는 없다. 인질이라는 상황을 인지해서 그렇다기에는 크게 온순한 성정도 아니니 평소 행실이라는 것이다. 위아래 구분할 것 없이 높임말, 마치 해군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이 딱딱함. 해군 중에서도 타고난 인재라고 불리는 이유 중 하나로 말투 또한 꼽을 수 있었겠다. 물론, 앞서 기술한 술고래 기질이 격식을 말아먹고 있지만….





스탯

 

공격 ■■■■■

민첩 ■■■■■

행운 ■□□□□

지능 ■■■■□

저격 ■■■■■

 

총합: 20

 

저격*: 모든 종류의 조준 후 발사체 적중력.

그런데 말빨도 저격의 일종이라며 한마디를 지지를 않는다. (*언어유희.)



소지품

 

【MP5를 개량한 총】을 사용한다. 

흰색으로 도색하고 장신구도 있는데, 대체 왜 이런 해괴망측한 물건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보면 묻는 말에 대답은 안 하고 총 이름은 평화라고 소개해 준다. 장식품이니 놀라지 말자. 이건 그냥 평범하고 간지나는 둔기다. 한때는 도색하기 전 이 총을 가지고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을 수도 있다. 백발백중의 천재 명사수, 인간이라는 태생적 한계와 나이를 뛰어넘은 해신. 그러나 몇 년 전 전쟁통에 눈을 잃고 그 위상 빛이 닳았나 싶더니 아예 육탄전으로 전선에 복귀했다. 그런 실력 좋은 명사수 준사관이 잡혀왔다니 이쪽 준사관을 보낸 해군 측은 지금쯤 사기가 꺾이며 비상에 걸렸겠지. 하지만 다른 해군이 구하러 오는 것보다 그가 아예 해적으로 직업을 갈아탄 모습이 더 잘 그려지는 건 왜일까….

 

처X처럼 소주병】을 소지하고 있었다. (압수당함.)

이건 뭐야? 물어보니까 수틀리면 불지르고 도망칠 생각이었다고 한다. 미쳤나? 보니까 내용물은 딱히 없었다. 눈 한쪽 잃고 저격수 짓 그만두더니 아주 그냥 투척병으로 직종을 바꾼 것일지도 모른다. 옆에 후임이 있어서 불을 아직까지 지르지 않은 걸지도 모르니 우선 압수했다. 참고로 본인도 쿨하게 넘겨줬다.





선관

 

아스톨포 울프 슈냐의 직속 후임. 자신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지만 후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신은 삶에 미련이 없고 생각도 없고 수틀리면 해적 되면 그만이지만 (선례도 많이 있을 거고) 후임은 너무 군기가 잡혀 있어서 보는 자신이 안쓰러울 정도로 우선 지켜주고 싶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항복도 하지 않고 아직 해군으로 남아있다. 후임만 없었으면 이참에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직접 알아보자.

 

 

 

Title 27, Section 5.22 of the Alcohol,
Tobacco and Firearm code says that vodka must be distilled and treated until it is
'without distinctive character taste, aroma color,'

 

yunic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