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서 대필 샘플 (1)

 

 

  외관 

 

 대중적으로 알려진 정보에 의하면 아니마는 원형이라 칭할 실질적인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다. 덕분에 본 종족은 현세에 새로 수면 위로 떠올랐거나 완벽하게 패가망신하여 멸족한 종족의 형태 전부를 이해할 수 있었고 몇십 번 그 다양한 영혼을 탈피의 재료로 사용한 결과 막상 본인은 어떤 종족을 특정 지을 수 없는 지금의 외형이 육안으로 인식된다. 종족 특성이라는 표현이 가장 올바르겠으나 죽음을 기워낸 부작용이라고 한다면 그렇게도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선천적인 요소라는 점을 감안하여 타고난 재능의 범주로 칭하고자 한다면 또한 그래도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를 이해시켜야 하는 대상은 항상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형을 가지고 있어도 인간의 심장에 해당하는 기관이 영적인 존재처럼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형태에 있어 개인차는 분명 존재할지라도) 영혼의 본질이라 불리는 ‘코어’는 분명 실체가 존재하기에 ‘아니마 살인’으로 규명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는 곧 실체 없는 현상이 종족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지 않은가. 다만 일반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그의 어느 부분이 심장부에 해당하는지 추측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당신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머리─비단 금속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장신구’의 형태와 가장 흡사한 보석 박힌 물체이다 보니 이런 표현을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를 본 적 있는가? 들숨과 날숨에 색상이 부여된 적 있는가? 폐의 형태를 추측할 수 있겠는가? 목의 단면은 피와 살로 분류할 수 없는 형태를 지니며, 가슴에 피어오른 촘촘한 꽃이며 탁한 보랏빛에 수놓아진 이름 모를 종족의 상징이 수놓아진 모습은 또 어떻고? 상반신의 근원이 인간의 신체라 추측되나 또 천 아래로 내려온 하반신은 이름 모를 짐승─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사슴 다리 정도일 테지만, 또한 확실하지 않다.─ 과 갑각류의 꼬리를 표방하고 있지 않은가? 하나를 핵심 요소로 특정할 수 없어 진정한 형태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다 보니, 어디까지나 편견이자 낭설로부터 비롯된 시각으로 ‘초월적 존재’를 마주했다며 그 존재에 공포심을 호소하기도 한다. 해당 종족의 불합리한 죽음이 해당 종족의 연구의 시발점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웃기지도 않은 일이다.

 

 다시 넘어와서, 영혼의 공명을 다소 과격하게 해석해 보자면 본래 연결되어 있지 않은 천을 마구잡이로 주워 기워내는 과정이라 표하겠다. 압축해 보자면 부조화’라는 표현이 걸맞다. 영혼의 본질과 무관하게 그것들은 얼핏 한곳에 어우러져 있으나 그래서는 안 되는 것들의 집합체였으니 기이하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의 시각에서는 그 종족은 형태 없는 신화의 존재로 여겨질 수도 있었고, 혹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짐승이나 ─종족으로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체가 아닌 하나의 현상, 등의 복잡한 평가를 내어두며 초현실적인 예술 작품을 애써 이해하기 위해 짧은 견문을 더듬는 듯 행동하는 것도 영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단호하게 말해보자면 이런 배려 아닌 배려는 해당 종족을 대하는 데 그리 유용하지 않다. 아니마를 대하는 데 가장 편한 사고방식은 그저 상상하지 않고 형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저 모든 특성을 하나의 객체로 인식하고, 기원이 무엇인지 깊게 파고들지 않는 것이다. 그 자신조차 특정 부위의 기원을 기억하지 않는데 하물며 타인이 이를 이해할 필요성이 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당신이 이종족을 분류해야 하는 숙명을 가졌거나, 생명의 기원을 더듬거나, ‘코어’를 파헤쳐 살인을 행할 것이 아니라면 그 외형을 이해하는 행위는 하등 쓸모없는 짓에 불과하다.


  공개 성격 

 

 내뱉은 숨이 순환하듯 그 심성은 유순하게 흘러간다. 나무가 년을 담습할 수록 나이테가 쌓여 촘촘하게 새겨지듯 그 몸에 자애가 켜켜이 쌓인다. 차별을 받는 당사자가 담습 하지 않으니 그 앞에서만큼은 차별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영혼의 공명이라는 개념에 심성의 치유 또한 포함되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눈앞에 있는 이 혼체만큼은 많은 이들이 호감을 가질 요소를 기워둔 것처럼 편안하고 유쾌했으니 어쩌면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모두를 굽어살필 수 있었다면 얼마나 많은 영혼이 그에게 감화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아니마가 어디까지나 신이 아니라 종족으로 분류된 이유는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많은 영혼을 포식할 생각이 추호도 없는 이 영혼의 태도는 입장에 따라 방관적이게도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과하게 모난 이들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말이다.─ 다만 이 ‘방관적’이라는 표현은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 대부분의 평가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사항이니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지 않은가? 오는 이 막지 않고 다가가는 동시에 원치 않는 이들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는 것도 어떻게 보면 나름의 배려로 취급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곱절 이해한다. 애틋한 관계를 동경하고 인정욕 강한 이들에게 자신의 성격이 독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기꺼이 이해한다. 그는 늘 일부 자신을 고깝게 보는 이들의 생각을 반박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반박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평가가 격하되는 것보다 괜한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더 싫어했으므로. 유년기의 영혼이 본능적으로 거부하기라도 한 듯 여러 영혼을 기워낸 이 형태는 다양한 것을 수용했으나 분쟁만큼은 극도로 꺼려 했다. 많은 사유를 들 필요성은 없다. 생각해 보아라. 평화의 대척점에 놓인 분쟁이라는 개념을 좋아하는 이 얼마나 되겠는가? 다만 이리 강조하는 이유는 그런 사유를 제쳐두고도 강조할 만큼 분쟁을 싫어하는 성향이 짙기 때문이다. 분쟁을 섬멸하기 위해서라면 그는 자신의 일이 아닐지언정 중재자로 나설 준비가 되어있다. 영혼에 새겨진 세월만큼의 지혜를 나누어 분쟁을 종결시키려고 한다. 광적인 것은 전혀 아니나 타인을 부정하지 않는 평소의 성정을 생각해 보면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태도임은 분명하다. 동시에 이는, 하나만 유의하면 이 영혼과 무난하고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평온한 영혼 앞에서 의미 없는 논쟁을 하지 말 것. 

 


  기타 

 

 죽음이라는 개념과 무관했다. 다르게 말해보자면 초연했다. 관계의 깊이를 막론하고 부고 앞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모습은 비교적 생이 짧은 이들에게 있어 섬뜩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삼백 년이라는 삶을 살아오면서 목격한 죽음의 횟수를 가늠해 보면 순리를 순응해야만 버틸 수 있지 않겠는가. 예외가 있다면 죽음에 행위자가 개입한 사례이다. 살인, 그리고 자살. 생이라는 것이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라지만 그것이 경시輕視의 까닭이 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행위를 돌이킬 수 없다지만 생에 걸친 만회의 기회조차 끊어내는 것은 영혼조차 씻을 수 없는 중죄이다. 그는 타인을 이해하는 만큼 타인의 가능성을 보고자 했다. 흙으로 돌아간 육신이 꽃의 거름이 되는 자연의 순환처럼 개인에게 부여된 삶이 언젠가 의미를 가지기를 기대하고, 소망하기를 바라는 이었다. 그것만이 모든 죽음에 초연한 이를 흔들리게 만든 강풍의 연유이며 오래도록 무뎌진 감각이 잠시간 되살아나는 사유이다.

 

 죽음으로부터 기여 받아 살아가는 종족이 감찰의라는 직업을 가진 이유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있다. 의외로 해답은 바로 그곳에 있었는데, 죽음으로 성장하는 자신 또한 그 죽음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삶으로 치환하면 헌신적인 사상임에도 불구하고 종족의 성장 방식인 ‘영혼을 흡수한다’는 사실에 꽂혀 업무 중 사체로부터 영혼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냐는 악소문이 돌기도 했는데, 영혼은 대부분 죽은 장소에 남아있으니 시체를 후송 받아 조사하는 자신은 그럴 수 없다며 해명한다. 이는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의 어두운 일면 중 하나로 볼 수 있겠다. 물론, 그 성격상 분쟁을 막기 위해 해명한 것과 별개로 사적인 원한을 가지지는 않았다. 늘 그렇듯이.

 

yunicorn